버스야 훨훨 날아라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어어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오며. 그것은 보기에 따라선 꽤나 싱거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심상한 일이 아니었다.

3412번 버스는 강동구 끝인 상일동부터 우면산까지 마을버스 치고는 긴 노선을 운행하는, 버스다. 그 버스가 내 눈 앞으로 나타났을 때는 언제나 보던 것이라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원래 다니던 골목길을 떠나 큰 길로 접어들더니 마침내 고속도로 위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는데야! 나는 내 눈을 의심치 않을 수 없었던 거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강동, 천호, 올림픽공원, 잠실, 강남역을 누비는 그 마을버스는 마을버스답지 않은 긴 노선을 다니는데다가 서울 시내에서 제일 복잡하달만한 길로만 꼬불꼬불 운행하는 그런 버스이니, 그런 마을 버스가 자기가 원래 다니는 복잡한 동네를 옆구리에 적은 채로 보기에도 경쾌하게 고속도로를 달리는 모습은 놀랍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그런 차가 보무도 당당하게 평소 시내에서라면 엄두도 못낼을 법 한 속도로 온갖 비싼 차를 앞지르며 다니는 걸 보노라니 어찌나 통쾌한지! 고삐 풀린 말처럼 쿵쿵거리며 그 버스 안을 울리고 있을 실린더랑 피스톤은 또 얼마나 사람을 두근대게 만드는지! 그 통쾌함은 일탈이 주는 짜릿함을 오래 느껴보지 못한 자의 가소로운 대리만족이었을지라도. 대전 방향을 향해 경쾌하게 속력을 내는 그 연두색 마을 버스를 다는 홀린 듯이 뒤따라 가고 말았던 거다. 나도 모르게. 오래전에 본 단막드라마 마을버스의 내용을 머리 속으로 떠올리면서.

누구나 비록 꿈은 꾸고 설레되, 함부로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일탈이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다소 호들갑스러운 말일지는 모르나 굴레처럼 주어진 길을 벗어나 그 길위에 선 어떤 고급차보다도 자기의 존재를 뽐내며 훨훨 날아오르는 그 마을 버스를 보면서 나는 반짝하는 황홀한 기분에 젖지 않을 수 없었으니, 나도 내게 굴레지워진 노선을 언젠가 벗어나 그렇게 훨훨 날아보았으면 하는 가쁜 심정으로. 언젠가는 나도 저 버스에 올라타고 훨훨 날아보고 싶은 소원으로. 오랫동안 잊고만 살았던 자유라는 이름의 숨가쁨으로.

by 흣튼혜음 | 2009/08/25 12:22 | 흣튼혜음 | 트랙백 | 덧글(0)

ㅎ씨 금연에 실패하다.

하루에 반갑 정도를 피우는 정도의 ㅎ씨는 스스로를 헤비 스모커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만 그가 즐겨피는 니코틴 0.6mg짜리 멘솔 담배의 향이 남들의 코에는 독무(毒霧)처럼 지독하다기에 끊어볼 작정을 한 것 뿐이었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까짓 담배야 대번 끊지 못하랴.'

허나 그의 순진한 생각과는 달리 담배를 끊는 것은 ㅎ씨의 의지 소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이제부터 담배를 끊겠어 다짐을 하고 처음에 한달이야 별 일 있었으랴. 남들이야 뭐라든 저 나름으로는 독종인 ㅎ씨 그 어렵다는 금연도 첫 한달은 그럭저럭 버틸만했던 건 거다. 그러나 어디 세상 일이 입맛에 맞도록만 돌아가랴.

'서거'

처음엔 농담이었던 말이 입에서 입을 옮겨 뉴스가 되더니 역사가 되더니 전설이 되어버리는 일에야, ㅎ씨에게야 그래도 가장 가슴 가쁘고 느꺼웠던 그시절이  이발소 테이블위에 나뒹구는 삼류잡지처럼 루머가 되고 농담이 되고 치욕이 되는 꼬락서니가 보임에야! ㅎ씨는 다만 언제나 담배가 담겨 있던 포켓의 주머니가 허전했을 뿐이고.

ㅎ씨의 굳은 다짐은 하루 아침의 그 눈물과 함께 스러졌던 거다.

그러고 한달여 사람의 감상처럼 얄맙고 못믿을게 또 있으랴 게다가 다른 감정도 아닌 슬픔과 분노라는 감정에야! 그 검은색 에테르가 붙은 감정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살기에 ㅎ씨의 가슴은 너무나 경박하고 또 품도 넓지 아니하다. 그렇다 그 모든 것은 이미 처음부터 지나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으로서, 그것을 가슴에 오래오래 품고 사는 자는 자신이 세상에 적응치 못하는 바보 멍충이라는 사실만 확인시켜줄 따름인 것. 비록 처신도 출세도 못하는 ㅎ씨지만 세상을 향한 한줄기 옹졸한 야심은 있어 끄트머리 눈물로 세상살이 못하는 놈 소릴 듣고 싶지는 않았던 겐지, 얄밉게도 ㅎ씨는 그만 그 농담을, 뉴스를, 역사를, 신화를 혹은 루머를 치욕을 제 가슴에서 지워버리고 만다. 고작 그런 일로 일껏 끊은 담배에 다시 손을 댄 건 어리석었어. 제 나름대로 질책도 하고 또 내일에의 단단한 다짐을 한줄기 맨솔향과 함께 내뿜으면서. 이번에야말로 생애 마지막 담배가 되겠구만.

그러길 두어달 드디어 오늘 밤에 유난히 반짝이는 별을 쳐다보며 또 그 맨솔 연기를 날리게끔 된 것이다. 담배를 끊으려면 세상을 사랑하지 않아야 하는 걸까. 아무것에도 마음을 열지 않고, 영원한 것 저 멀리 보이는 별같은 아니지, 우주에 영원한 것이 있을까마는, 아니 그래도 최소한 나보다는 오래갈, 내 초로같은 인생으로 보기에야 영원에 가까워 보이는, 그런 것. 사람을 사랑한 것은, 그래도 어딘지 별처럼 빛나고 형형해 보이는 그런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한 것은, 정말로 바보 같은 짓어었을까. 그렇게 3분짜리 생각을 하는 동안 두달만에 폐를 찡하게 울린 담배 연기가 ㅎ씨의 마음을 어지럽힌 탓인지 맨솔연기 사이로 보이는 별이 유난히도 뿌옇게 흐려져서 ㅎ씨는 차마 남이 볼까 하는 두려움에 발길을, 총총히 집으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by 흣튼혜음 | 2009/08/19 01:13 | 흣튼혜음 | 트랙백 | 덧글(0)

ㅉㅉ혹은 ㅃㅃ

신세대임에 틀림없다. 요즘의 날벌레들은. 그 이전의 선조들이 결코 택하지 않았던 죽음의 방식으로 산화하는 저들을 보라. ㅉㅉ, 혹은 ㅃㅃ 같은 소리를, 비명을 지르며 그들은 죽는다. 퍼렇고 뻘건 불똥으로 자기가 지구에 존재했던 증명을 남기며. 숱한 방법으로 숱한 벌레들이 죽었지만 이런 방법은 처음인지라 죽으면서도 적잖이 당황스러울 게다. 그러기에 ㅉㅉ, ㅃㅃ 같은 이상한 비명을 빼놓지 않고 지르며, 폭발하는게 아니냐?

버스정류장을 향해 입구를 튼 과일점 앞에 파란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그는 앉아 있다. 한손에는 테니스채처럼 생긴 그것을 들고. 잊을만하면 터지는 ㅉㅉ소리며 파랗게 터지는 폭죽 같은 벌레의 비명이 좋아선지, 손을 휘휘 휘두르며 벌레를 터뜨린다 그는. 쉴새 없이 터지는 ㅉㅉ, 혹은 ㅃㅃ.

그 숱한 ㅉㅉ들이야 어디 상상이나 했으랴 저 달콤한 과일향기 속에 그 매혹적인 백열전구 불빛 속에 그토록 음험한 음모가 있으리라고. 디엔에이에 새겨진 그 숱한 죽음의 메뉴얼에도 ㅉㅉ은 결코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소 들뜬 과일가게 주인의 전기장에 하릴없이 ㅉㅉ으로 혹은 ㅃㅃ으로 파란 불꽃이 되어 산화하고 마는 것이다. 아아 충생무상이라.

관운장 언월도 휘두르듯 쉴새 없이 라켓을 휘두르며 무수한 ㅉㅉ을 터뜨리는, 다소 충혈된 그 과일가게 주인의 눈을 보고 있으니 나는 무서웠다. 격한 불꽃과 ㅉㅉ하는 파열음 말고는 존재를 호소할길 없는 벌레랑 나는 무엇이 다르냐. 그 향기로운 과일향해 취해 나는 그 얼마나 자주 저 ㅉㅉ으로 달려들었더냐.

그 밤 제철의 과일들은 온갖 빛깔로 색깔로 버스에서 내려 집에 가는 사람들을 붙잡는데, ㅉㅉ은 쉴새 없이 터지며, 너도 그렇지? 너도 그렇지? 하며 내게 말을 걸었다. 파란 불똥으로, ㅉㅉ, 혹은 ㅃㅃ?

by 흣튼혜음 | 2009/08/18 02:35 | 흣튼혜음 | 트랙백 | 덧글(1)

▶◀나는 ㅋㅋ이 싫다.

나는 ㅋㅋ이 싫다. ㅎㅎ도 싫고 ㅇㅇ도 싫고 ㄱㅅ도 싫지만 ㅋㅋ은 특히 싫다.

ㅎㅎ 비슷하게 웃는 법은 있어도, ㅋㅋ비슷하게 웃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 듯 한데 왜 요새 사람들은 죽으나 사나 ㅋㅋ인지 모르겠다. 처음엔 어쩐지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보이던 것이 그 쓰는 사람들의 뉘앙스로 미뤄보아 냉소 혹은 비웃음으로 더욱 잘 쓰인다는 것을 깨달았을 적에 ㅋㅋ에 대한 혐오는 더욱 심해졌다.

ㅋㅋ은 밝은 웃음이 아니다. 행복한 웃음이 아니다. 건강한 웃음도 아니다. 거칠고 공격적인 웃음이다. 야수성을 숨긴 웃음이다. 한마디로 못된 웃음이다. 인터넷 댓글란에 자기를 드러내지 않은 누군가가 단말마처럼 남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의 파도는 얼마나 보는 이를 긴장시키며 섬짓하게 하는가. 그 ㅋㅋ이란 마치 캬캬캬, 나 쿠쿠쿠가 아니라 킬킬킬.. kill kill kill 이 연상되기까지 한다.

또한번의 비보를 들었다. 숱한 관심이 죽은 사자를 덮치는 구더기 떼처럼 뉴스에 들러붙어 상채기를 핥고 나면, 언제나 그렇듯이 무수한 동정심이, 또 무수한 호기심이, 그 뉴스를 낳게 한 자에 대한 추측과 무수한 분노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모든 관심이 꺼지고 사그러져 그 뉴스의 기억 마저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정보의 찌꺼기로 인터넷에 남고 나면 또 확인하듯 지나가듯 ㅋㅋㅋ이 붙겠지.

나는 그 숱한 사람의 ㅋㅋ앞에 벌거 벗고 서 있는 어떤 사람을 상상한다. 돌이나 몽둥이나 발길질보다 더한 ㅋㅋ의 폭력 앞에 두려워서 쩔쩔 매는 사람을 상상한다. 어디로 숨어도 ㅋㅋ의 포위망은 그 사람을 놓아주지 않는다. 많은 사람의 입이 사람을 해칠 수 있냐고? 당연한 말이다. 오히려 주먹질이나 발길질 보다도 사람을 상해입히기 쉬운 것이 말과 웃음 아닌가.

이태원의 솔개라는 노래의 이런 가사는 오늘 같은 날 가슴을 후려친다. '우리는 말안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권태속에 내뱉어진 소음으로 주위는 가득차고' 수많은 ㅋㅋ과 못된 가십, 스캔들(그의 마지막 작품이 스캔들이라는 이 아이러니라니)을 권태로 하여 잉태하고 배급하고 나눠먹으며 고독과 권태로 나날을 사는 오늘의 사람들..

그 사랑하던 이, 빛나던 이, 아름답던 이가 죽은 뒤 하늘에서도 생전에 사람들을 기쁘게 했던 그 명랑함과 활기참으로 밝게 빛나기를 조용히 빌어본다. 가슴에 별을 품었던 이여, 이제 그 별 하늘로 올라가 유난히도 빛나던 그 눈동자처럼 영원히 초롱초롱 빛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아아 슬픈 날이다.

by 흣튼혜음 | 2008/10/02 15:02 | 흣튼혜음 | 트랙백 | 덧글(1)

블론디의 데보라와 김완선



그 시절에는 안 그래도 가뜩이나 심심한 토요일을 프로야구 중계나 배달의 기수 따위나 틀어 대서 더 지루해지고 말게 하고 마는 국내 TV프로그램보다는 오히려 양키방송(AFKN)의 것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비록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기억이 맞다면 오후 4시에는 울뚝불뚝한 근육들이 훨훨 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WWF를 보여줬고 그 앞 시간은 뮤직비디오를 틀어주었다. 세상에는 MTV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소문으로도 모르는 시절, 나는 어쩌다 나오는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 빼고는 아는 얼굴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그 뮤직비디오 시간도 즐겨 보았는데, 그것은 음악에 일가견이 있어서라거나 감식안이 있어서라거나, 특별히 취미를 붙여서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라, 소년은 심심했고, 심심할 땐 TV를 보았으며, 그 시간대의 TV 프로그램 중에 그래도 그게 제일 나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날도 모르는 가수, 그룹들의 희한한 영상에 넋이 나가 TV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던 그런 날이었는데, 어 이것은 틀림없이 어디선가 많이 듣던, 그러니까 나도 잘 아는 노래다 하는 곡이 한곡 흘러나왔다. 그게 바로 위에 동영상으로 걸어놓은 Blondie의 Call Me다. 신나는 리듬의 노래도 끝내줬지만, 그 노래를 부르는 (이름도 모르는) 여가수의 육감적인 몸매놔 뇌쇄적인 눈매와 안 그래도 도드라진 광대뼈를 에펠탐처럼 뾰족해 보이도록 유난을 떤 화장 같은 걸 보며 나는 웬지 모르는 이질감과 속이 울렁대는 느낌 같은 걸 받았는데 지금에야 그런 느낌이 꼴림이었구나 하고 알지만 그때는 도대체 그 기분의 정체가 뭔지 몰라서 따뜻한 토요일 오후에 TV앞에 혼자 앉아 쩔쩔 매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기분은 다행히도 그렇게 오래가지 않아 나는 꼭 저 노래가 들어 있는 레코드판을 사야겠다 하는 다짐을 까먹고, (노래제목과 가수 이름을 몰라도 레코드가게에서 대충 이런건데요 하며 콧노래를 부르면 레코드점 주인들은 그걸 잘도 찾아주곤 했다. 더구나 Call Me정도 수준의 히트송을 모를 그들이 아니고) 한 10여년을 살아버렸다. 가끔씩 그들의 다른 노래나 다른 뮤직비디오를 보게될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번번히 그게 그때의 Call Me와 상관없는 다른 밴드의 노래인 줄 알고 와 저 여자는 뭔데 이토록 사나이의 꼴心을 울리노? 하며 새로운 감탄을 하고 말았으니 저렇게 잊기 힘든 외양의 데보라 누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해 그때마다 다른 사람인 줄 알다니 사람 얼굴 잘 잊어버리고 기억 못하는 걸로 치면 나만한 사람이 없을 게다 하는 자괴감마저 들고 만다.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소년의 가슴을 장구치듯 두들겨댔던 섹시한 데보라 누나.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섹시하고 멋진 모습으로 오래오래 남아주시기를 데보라 누나가 멀리서 알아주거나 말거나 혼자서 몰래 바래본다.

여담이지만 완선이누나가 처음 등장했을 때 광대뼈 세우기 화장술이며 퍼런 멍 눈화장이며 눈까뒤집기 유혹술 따위를 보며 남들은 한국의 마돈나라고 칭할 때 아닌데 저건 어디서 보긴 본 건데 마돈나는 아니고 누구더라 하고 완선이누나의 롤 모델을 떠올리려 애를 태운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야 내가 떠올리려고 했던 게 바로 이 데보라 누나가 아니었던가 하고 결국 연상을 해냈다. 하지만 그런 연상을 완성하고 났을 땐 완선이 누나는 대만에서 양말 사업을 하겠다며 가수 생활에서 은퇴하고 나서였다. 그래서 뭐 어떻다는 건 아니고 그냥 뭐 그렇다는 것이다.

by 흣튼혜음 | 2008/09/09 22:30 | 지성레코드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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